참교육 열풍

드라마의 힘이 크긴 큰가 봅니다. 넷플릭스에 참교육이 흥행을 하자, 일순간에 사회의 분위기가 쇄신 되는 듯 합니다. 2026년 7월 11일자, 경기일보에 경기도 교육감이 50여명 규모의 교권보호국을 만든답니다. 전국 시도교육청 최초라며 변호사, 정신과의사, 전문 상담사, 경찰 출신 전문가, 현직 교사 등으로 구성한답니다. 도민들에게도 자원봉사 기회를 주기도 한답니다. 악성민원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하기 위함이랍니다. 교권보호국에 더해 교육감 직속 민원 콜센터 가동을 통해 교사 직접 민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교육감실 개방을 통해 직접적으로 학부모들과 소통하며, 토요일 오전을 민원 청취 시간으로 삼아 다양한 민원을 직접 처리하겠다고 합니다. 충남교육감도 교권보호관 추진단 출범에 서명했고 강원교육감도 교권보호지원단을, 제주도교육감도 교육활동 보호담당관을 두어 교권보호를 하겠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지금껏 교육청의 신규 행정 공무원에게 떠 맡기듯 방치한 교권보호 담당을 교육감이 챙기겠다니 말입니다. 부디 지금의 각오대로 잘 해 주시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그러나 지금 외치고 있는 교권보호국이 진짜 교권보호국인지 되짚어 보는 목소리는 없어보입니다. 차분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어떻게 교육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보호해야하는지 말입니다.
무소불위의 시대에서 무소능위의 시대로
1958년 7월 31일자 평화신문에는 일선 교사의 수기가 실렸습니다. 제목은 ‘꾸지람보다 온정으로, 야비한 체벌은 삼가야 할 일’입니다.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듯한 이야기였습니다. 내용인 즉, A라는 덩치도 좋고 필자인 담임교사의 눈에도 훌륭해 보이는 아이가 반에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처럼 교사 눈 밖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금전을 갈취하고 왕처럼 군림하였습니다. 피해학생의 부모가 학교에 오게된 계기로 담임은 A의 행실을 알게 되었고 A의 가정을 방문하여 이 사실을 알립니다. A의 가족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깊이 사과하였습니다. 해당 선생님은 일을 바로잡고 A를 따뜻하게 타이릅니다. 오히려 A를 심하게 체벌한 것은 학부모였습니다. 담임은 학부모에게 어린이의 모든 잘못을 욕하고 때리고 꾸지람을 주기 보다 어디까지나 부드러운 말씨와 따뜻한 마음으로 가르쳐야 된다고 역설합니다.

오늘날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과 뭔가 비슷한 듯도 하고 역할들이 바뀐 듯한 느낌도 듭니다. 확실한 것은 선생님의 말씀 속에 시대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학생의 잘못을 학부모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학생을 타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의 모든 잘못을 욕하고 때리고 꾸지람을 주기 보다’라는 표현을 통해 당시에는 이 같은 교사의 행위들이 가능했음도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은 방법으로 부드러운 말씨와 따뜻한 마음으로 가르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음도 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교사 무소불위의 시대였습니다. 교사는 적어도 교실에서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에 대해서는 무소불위(마땅히 하지 못할 바가 없다)하였습니다. 세대가 바뀌면서 그 권위가 점점 희석되었다고는 하나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교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사는 무소능위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마땅히 할 수 있는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